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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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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수 위기와 세대교체 (1973~1988) === 1973년 7월 14일 [[2차 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8월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적성국 교역 금지 조치」를 발동해 곡물·사료·비료를 포함한 모든 물자의 공산권 수출을 막았다. 윌리스는 다시 군납에 나서 2세대 필드 바와 퍼시픽 소다를 전선에 보냈고, 전쟁 수요로 국내 곡물가가 오르면서 곡물 부문도 호황을 누렸다. 1976년 11월, 종전 한 달여 뒤 진보 일간지 《라 부아》가 윌리스 인터내셔널 SA가 전쟁 중 제3국 무역상을 거쳐 사비에트에 대량의 곡물을 팔았다고 폭로했다. 1977년 하원 청문회가 열렸지만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판매 주체가 스위스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1978년 제정된 [[대외무역관리령(루이나)|대외무역관리령]]에는 해외 자회사를 통한 우회 수출을 처벌하는 조항이 들어갔고, 이 조항은 지금도 '윌리스 조항'으로 불린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s-9.5|금수 위반 의혹]] 문단 참고.}}} 1979년 새뮤얼은 건강을 이유로 물러났고, 장남 로버트 A. 윌리스가 2대 CEO에 올랐다. 1978~1980년 군정기에 윌리스는 정부의 곡물가 동결 요구에 비축분을 풀어 협조했을 뿐 눈에 띄는 특혜를 받지 않았다. 군정의 기업으로 불리는 [[플라자 그룹]]과 달리 윌리스에 군정 유착 의혹이 드문 것은 이 때문이다. 로버트는 곡물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곡물을 먹는 쪽으로 사업을 넓혔다. 1983년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을 인수해 윌리스 프로틴을 세우고, 병아리와 사료를 대고 농가에 사육을 맡기는 육계 계열화 방식을 루이나에 처음 본격 도입했다. 사료를 팔던 회사가 가축의 주인이 된 것이다. 1981년 [[공정거래법(루이나)|공정거래법]] 제정으로 출범한 [[루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1984년 윌리스의 곡물 엘리베이터 지배력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윌리스는 엘리베이터 상당수를 서류상 분리하는 방식으로 1989년 무혐의 처분을 받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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